몽골인들은 오랜 공산체제에서 틀이 잡힌 관행 때문인지 한국이나 일본의 접객업소처럼 상냥과 공손은 좀 모자란듯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보이는 친절은 마음 속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친절이었습니다. 제 제자의 가족이 저를 유명한 몽골 요리 식당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몽골은 목축이 주 산업이기 때문에 식탁에 오르는 요리는 대부분 고기류 입니다.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는 익숙한 육류이기 때문에 어떻게 요리를 하든지 그런 요리를 즐기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제공해주는 요리는 뭐이든지 먹을 준비를 하고 나간 저이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몽골인들이 먹는다고 알려져 있는 말고기, 늑대고기, 마못트 고기가 나오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빌다시피 하였습니다. 다행이도 그런 육류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고기 요리에 끼어 나오는 감자는 맛도 좋았고 미국에서 먹는 스테이크와 별 로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유차는 약간 제입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맛있는 것 처럼 주는 대로 마셨습니다.
제가 사진에서도 보았고 말로도 얻어들은대로 몽골인들은 말 젖을 짭니다. 마유를 어떻게 먹는냐고 물었더니 그것을 마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마유로 몽골 특유의 술을 만들어 마신다고 했습니다. 또는 마유로 만든 치즈도 몽골인들에게는 선호음식 중의 하나라고 가이드가 말해주었습니다. 몽골은 북부지망 외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야채, 과일, 감자, 옥수수, 쌀 등을 주로 중국에서 수입해온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수입은 주로 식료품이지만 수출은 양모, 육류, 가죽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행이도 광물 매장량이 풍부하여 구리, 몰리브덴, 원유등의 생산이 활발하여 유목민이 아닌 근로자들의 40%가 광업에 종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백화점에 들리면 케쉬미어 상품이 많습니다. 그러나 캐쉬미어의 원산지 답지 않게 가격은 싸지 않았습니다. 제가 들려본 한 유목민의 집에서는 양과 털 염소로부터 털을 채집하고 있었습니다. 수입이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한 때는 양모1킬로그램 당 미화로 43 달러 까지 받을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가격이 하락하여 25달러 정도라서 별로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울상이었습니다.
몽골인들은 4살 정도가 되면 말타기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수백 마리의 소나, 양떼를 치고 있는 목동은 말을 타고 긴 막대기를 든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광경은 평평한 초원에서는 목동들이 자전거나 모터 사이틀을 타고 가축떼를 몰고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몽골도 다른 나라와 같이 휴대전화를 갖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가까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목동들도 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 연결 상태는 티벳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고급 호텔이라고 하지만 인터넷 사용은 무료이고 웬만 업소의 간판에는 웹주소가 병기되어 있었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몽골인들이 징기스칸에 대한 존경은 거의 신에 드리는 예배수준입니다. 사실 징기스칸을 신격화하는 부류의 몽골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울란바타르를 방문했을 때는 졸업 시즌이었기 때문에 좋은 옷을 입고 꽃 다발을 안고 다니는 졸업생들이 몽골의 의사당 앞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들은 단체로 또는 삼삼 오오로 떼를 지어 징기스칸의 동상 앞에서 졸업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제가 투숙한 징기스칸 호텔이나 후에 찾아간 한인 소유의 선진그랜드 호텔에는 졸업생과 그들의 축하 행사에 참여를 하는 인파가 호텔의 로비와 식당들을 가득 채웠습니다.
몽골을 관광하실 분들을 위하여 참고로 한 말씀드린다면 관광 스케쥴에 몽골의 전통 음악과 춤으로 구성된 공연을 빼놓지 말라는 부탁입니다. 그들의 공연은 하나하나가 다 이색적인데다가 독특한 여흥거리이었습니다. 특이 두 여자 공연자가 나와 몸을 마치 무골신체인 것처럼 곡예술을 보이는 장면은 놀랍기 보다 기적 같다는 생각을 하지않을 수가 없없었습니다. 제가 닷세 동안 견학을 한 몽골은 화려하지도 않고 정돈이 잘 되어 있지도 않지만 배울 것이 많은 나라임에는 틀림이없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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